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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에세이

고래뱃속의 요나이야기(욘1장~4장)

하나님께서는 왜 요나는 택하셨을까요?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

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욘 4:2)




  요나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들리시나요? 

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엔 물고기 뱃속에서 고생한 요나가 

진득하게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요나서를 세 번 읽고 나니까 이 기도가 사실 어떤 기도였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나서를 처음 읽었을 때는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살다 나온 

요나의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거든요. 

게다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3일의 기간과 꼭 맞으니까, 요나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자신의 체험이 메시아를 예언한 사건이 되었으니 말이에요(욘 2장).



  두 번 읽고 보니 니느웨 성읍이 보였습니다. 

니느웨는 북이스라엘을 침략해 무자비한 학살을 일삼았던 나라,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나라의 관계를 아시고도 

북이스라엘의 요나 선지자를 들어 ‘너희의 악행 때문에 

재앙이 있을 것’을 니느웨에 전하게 하셨는데요. 

놀랍게도 니느웨는 그들이 섬기던 신이 따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서부터 백성, 가축에 이르기까지 12만 명 모두가 하나님 앞에 회개를 

올려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거두어주셨습니다(욘 3장).


  세 번을 읽고 나서야 요나의 입장에서 보게 되었는데요. 

요나는 왜 니느웨 가기를 꺼렸을까요? 

  요나에게 앗수르는 제발 꼭 좀 망했으면 하는 나라였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으니, 

니느웨에 가기까지 목숨을 걸 정도의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다시스로 도망하던 요나의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니느웨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예상외로 니느웨는 요나를 핍박하기는커녕,

 오히려 회개하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때 요나는 심히 노하여 

하나님께 외칩니다. 서두의 기도가 바로 이때 나온 것인데요, 

요즘 말로 읽어보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아 진짜, 하나님! 

어찌나 은혜롭고 자비로우신지. 인애가 아주 어마어마하셔서 

이렇게 쉽게 용서하실 줄을 내 진즉에 알고 있었수다!”


  요나는 니느웨에 도착하기 전과 후, 자신의 마음이 변한 것은 

깨닫지도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저라면 ‘선지자가 그것도 이해 못하냐!’ 하고 머리를 쥐어박았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작은 박넝쿨로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네 수고도 없이 자랐다가 없어진 박넝쿨을 네가 아낀 것처럼, 

내가 이들을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느냐?”(욘 4장)


  요나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끝이 납니다. 

요나는 과연 이 글을 기록할 때 어떤 심정으로 써내려갔을까요? 

지금은 하늘에서 새빨개진 얼굴로 저희들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묵상 이후 요나서를 다시 펼쳤을 땐, 요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시대 남유다의 아모스가 아니라 

굳이 요나를 택하신 것, 도망가던 요나를 붙잡아 다시 니느웨에 보내신 것,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요나를 가르쳐 깨닫게 하신 것처럼 

정말 끝-까지 요나를, 그리고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을요. 

사랑하는 선지자의 불의한 작은 마음까지도 해결하고자 사명을 주시고 

가르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2,700년 전의 말씀으로 

저를 깨닫게 하시고 주신 사명의 목적을 깨닫게 하십니다. 


  아직도 회개하지 못한 족속들을 구원하시려고, 

겁 많고 고집 센 못난 제게도 사명을 주신 하나님. 

아직도 덜 자란 제 마음까지 해결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오늘도 감사와 다짐의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